구전에 내려오는 신립장군 과 여인.
신립1546(명종 1)~1592(선조 25)의 마지막 전투는 전투이전에 이야기로 형상화된 전설로써 유명하다.
신립은 고니시 유키나(小西行長)를 맞아 충주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던 중 전사한다. 그 패전의 원인은 전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김여물 등이 반대함에도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데 있지만, 전설은 이런 것과는 무관하게 신립이 영웅으로서의 삶에 너무나 충실했기 때문에 여인의 원한을 샀다하고, 그의 행적을 민족적 시각으로 다시 해석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민중의 시각 속에는 조선조 여인의 삶에 대한 억압과 억압으로부터의 부정이 내재해 있다.
전설의 기본 골격은 이러하다.
신립이 젊었을 적, 사냥을 다녀오던 도중 산중에서 길을 잃고 밤을 맞이한다. 그때 마침 어느 집을 발견하나 여인 혼자 사는 집이었다. 이렇게된 사정을 물으니, 자신의 집에 성격이 포악한 머슴이 있었는데 그 머슴은 외람 되게도 여인을 사모하여, 여인의 부모에게 여인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부모는 심히 불쾌했지만 머슴은 막무가내였다. 부모는 여인의 앞날을 걱정하여 머슴이 잠든 틈을 타 그를 죽였다한다.
그런 일이 있고, 머슴은 원귀가 되어 나타나 여인의 가족들을 차례대로 죽이고, 오늘밤은 여인을 죽이기로 한 날이었다. 사정을 헤아린 신립은 원귀를 물리치고 여인을 구했다. 여인은 자신을 구한 신립에게 자신을 거두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신립은 사회의 이치를 내세우며 자신은 이미 혼인한 몸이라 하고 물리쳤다. 후에 여인은 자살하고 임진란 때 신립의 꿈속에 나타나 신립을 탄금대로 유인해 복수했고 신립은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한다.
전설의 주요한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신립이 정당한 일을 하고도 여인의 원한을 사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과 여인이 행한 반민족적 행위이다.
영웅의 삶 자체가 모든 면에서 일반인과는 달라야하고 영웅을 선망하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김유신이 매일 그러했기에 그날도 그의 여인인 천관녀에게 향하는 말에 목을 친 이야기에서처럼 대업을 이루어야 할 자는 사사로운 인간사에 얽매일 수 없다는 것이 영웅에게 부과된 사람들에 바람이다. 이 전설 속에 신립 또한 그런 영웅성에 충실한다. 또한 그와 관련된 여자 이야기 중 변방에서 잡은 절세 미인의 호녀를 참한 이야기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한 인간으로서 남자를 넘어 국운을 짊어진 영웅에 대한 바람이 새로운 형태로 형상화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으로 그는 국가의 영웅이기에 절대 패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신립은 실제 적에 의해 모욕적 패배를 당했고 죽음에 이르렀다. 민중들은 이 자신들의 영웅의 패배의 어떤 설명과 보상이 필요했을 것이며 여기에 한 여인의 원한을 끌어들여 훼손되어서는 안될 영웅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립이 왜 무모하게 배수진을 치면서 적과 대결을 하였는가는 많은 사람들을 의아스럽게 만든 부분이며 민중은 이에 대한 설명도 여인의 원한을 끌어들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인 또한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던 조선조의 일반적인 여인형일 뿐이기에 그녀에 대한 비판은 차단될 수 있다. 남자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던 시대, 한 남자에 대한 신의의 맹세는 결코 그르다고 말 할 수 없다. 여인의 가혹한 복수 또한 이러한 억압적 구조에 대한 암시적 항거 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억압이 심화되면 될수록 그 것에 대한 복종은 절대적인 것이며 어떠한 식으로든지 지켜야 될 가치로 자리잡게 된다. 여성에 대한 억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가치이기에 그걸 떠나서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자신에게 절대 기준으로 자리잡은 가치를 거부한 신립은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인의 신립에 대한 원한은 자신을 억압했던 사회체재, 남성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항거로써 작용 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자유로운 사고의 틀을 갖춘 현대의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는 그녀의 행위로부터 아이러니적 항거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자신을 억압하는 가치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 자신을 그리고 그 남자를 죽음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신립에게 있어 전설은 영웅의 생애에 얽힌 에피소드이지만 여인에게 있어 전설은 사회제도에 대한 복종의 아이러니적 항거이듯이 우리는 여기에서 여인의 행위에 좀더 관심과 애정을 표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이야기가 다층적인 관점을 제시해주는 사실을 볼 때, 전설은 한 여인의 죽음과 국가의 운명의 상호 대비로 분화되며 이야기는 생생한 극적 장치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신립은 영웅이다. 영웅의 여자.
신립은 권율 장군의 세 번째 사위인데, 권율장군은 신립을 대성할 인물이라 판단하고 사위로 맞아들였다.
신립은 남들보다 뛰어난 인물로 날렵하고, 닭귀신이 신립을 보고 물러날 만큼, 그리고 한 여인을 구명 할 만큼의 재주를 가진 영웅이다.
영웅은 삶 자체가 모든 면에서 일반인들과는 달라야 하고, 영웅을 선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것이 더 진해진다.
영웅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 중 하나가 '여성'이다. 이때의 '여성'의 역할은 영웅의 내조에 충실하여 그 업적을 도운다던가, 영웅이 진정한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장애물의 역할을 하게된다. 흔한 이야기의 구조를 보면
영웅들은 그 미혹에 빠져 실패를 한다던가, 아니면 곧은 절개로 이성을 잃지 않아 대성을 한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신립의 경우에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정당한 행동을 하고도 복수로 죽음(임란시 탄금대 전투)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신립이 잘못했다는 이야기인데, 정당한 일을 하고도 신립은 왜 복수를 받았어야 했을까?
그리고 이 전설의 여인은 어떤 역할이기에 정당한 일을 한 신립에게 복수를 했을까?
신립에게서의 그 여인은 다른 영웅들의 여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영웅의 영웅성을 시험하는 존재도 아니고, 영웅을 더욱 영웅답도록 뒷받침
하는 보조자도 아닌 그 여인 하나 자체로 상징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신립에게는 다른 영웅들과는 다른 '여성에 대한 사고'를 요구하였다.
미혹을 뿌리치는 영웅성에 충실하기보다는 그 여인을 첩으로 두었어야
그 여인의 복수도 피했을 것이고, 자신은 물론이고 나라도 살릴 수 있었다.
이 전설은 단순히 신립의 영웅적인 모습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여성에 대한 사고'를 제시하여, 그 판단으로 오는 결과를 보여 주므로써
전설로 내려 오는 이야기가 어떠한 교훈을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전설1
신립이 소년 시절 경기도 광주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을 때, 하루는 초립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외출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하늘에서 보라매 한 마리가 날아와서 신립의 초립을 발톱으로 낚아채어 남쪽으로 날아갔다. 신립은 초립을 찾으려고 보라매를 쫓아 남으로 달려가다 보니 이미 해는 지고 날은 저물어 어두워졌다. 보라매는 초립을 발톱에 끼운 채 문경 새재 어류동굴 큰 기와집 다락으로 날아 들어가므로 날은 저물고 배가 고파서 할 수 없이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기에 안마당에 들어가서 보니 과년한 처녀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여기까지 오게 된 연유를 말하고 초립을 찾아 달라고 했다. 처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하는 말이, 오늘 저녁은 소녀가 죽는 날인데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초립을 찾아 드리겠다고 말하고, 자기를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다. 의협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신립은 좋다고 승낙하고 방에 들어가 앉았다. 잠시 후 처녀는 저녁상을 차려 대접한 후에 숟가락 다발을 한아름 안고 신립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말했다.
"이것이 원래 이 집 식솔들의 수저였습니다. 그런데 약 일년 전부터 한밤중에 머리가 둘, 셋씩 달린 귀신들이 와서 잡아가고 이제 소녀만 홀로 남았습니다. 오늘밤은 소녀가 죽을 날입니다."
신립은 호기심도 있고, 자신의 담력이나 무술도 시험해 볼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처녀를 병풍 뒤에 숨어 있게 하고 방안에서 요귀들이 나타날 때를 기다렸다. 밤중이 되자 만 명의 군사와 천 마리의 말이 달려오는 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당이 소란스러웠다. 그러더니 괴수인 듯한 놈이 말하기를 빨리 방에 가서 처녀를 잡아오라고 호령을 하였다. 그중 한 놈이 방문을 열고 처녀를 잡으려고 들어오다가 신립을 발견하고 엎드리는 것이었다.
"어이구 장군님이 이곳에 왠 일이십니까"
자세히 보니 머리가 둘 달린 놈이었다. 신 장군이 힐책을 하였다.
"너희 놈들은 어떤 요귀인데 바르지 못한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하거늘 웬 소란을 피우는고?"
그러나 머리 둘 달린 요귀가 말했다.
"예전에 이곳에 행궁을 짓고 홍건적을 피하던 공민왕이 금은 보화를 땅 속에 묻어 두었는데, 그것이 세월이 오래 되어 요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터니 용서해 달라고 빌기에, 요귀들을 호령퇴치하고 처녀를 보았다. 처녀는 이미 혼수 상태가 되었기에 물을 먹이고 사지를 주물러서 소생시켰다. 다음날 아침 신 장군이 작별하려고 하니 처녀가 말하였다.
"소녀는 이미 장군에게 맡긴 몸입니다. 나도 장군님을 따라 같이 가겠습니다."
신 장군은 그럴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절하고, 그 집을 떠나서 앞산 고개를 오르는데, 뒤에서 '저기 가는 신 장군님 나를 좀 보소서'하기에 뒤를 돌아보니, 처녀는 그 집 지붕 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이었다.
그 뒤 신장군은 무과에 급제하여 오랑캐를 쳐부수고, 북명사에 올라 그 용맹과 지락의 명성이 국내에 떨쳤다. 임진왜란 때 부산에 상륙한 왜적이, 파죽지세로 영남의 각 읍을 석권하고 북상하니 장안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때에 선조 임금은 신립 장군에게 팔도 도순 변사를 제수했다. 그리고 종사관 김여물을 딸려주면서, 나라의 흥망이 장군의 몸에 달렸으니 적을 막아 나라의 근심을 없애라고 하명하며, 큰칼을 내리고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참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신 장군은 불시에 모병 한 8천 명의 군사를 지휘하여 새재에 이르렀다. 이때 상주에서 패하고 급해서 옷도 못입은 채 도망쳐온 적신장군 이일이 빨리 도망하자고 했다. 신 장군은 대노하여 이일을 꾸짖고, 목을 벨 것이로되 옛날 정리를 생각하여 살려줄 테니 전공을 세워 죄를 씻으라고 용서하였다. 장군은 지형을 정찰한 후 진을 치려고 하는데 그날 밤 꿈에 새재 어류동에서 만났던 처녀가 나타나 장군에게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장군은 말 탄 군사로 어찌 산악전을 하려고 합니까? 군졸이 팔천 군사라고 하나, 시장에서 모집한 수련 안된 오합지졸을 가지고, 산악전을 하면 저마다 살 곳을 찾아 도망갈 것입니다. 충주 탄금대에 가서 배수진을 친다면 도망갈 길이 없어 저마다 죽을 각오로 싸울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말을 믿고 종사관 김여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탄금대의 패전의 원인은, 새재 처녀 원귀의 간계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