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육군 방첩부대에서 대위로 근무할 때의 이진삼 의원. 태권도 7단인 이 의원은 무장공비 출신 특수부대원들을 훈련시킨 뒤 북한으로 침투해 북한군 33명을 사살했다. [이진삼 의원실 제공]
“66, 67년 북한의 도발이 극에 달했다. 66년 57회, 67년 118회에 걸쳐 무장공비가 침투했거나 국지 도발을 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시 방첩부대에 있던 내가 방첩대장이던 윤필용(작고) 장군에게 ‘북한으로 보내 달라. 북한군 사단장의 목을 따오겠다’고 요청했다. 윤 장군은 ‘살아 온다는 보장이 없다’며 만류했지만 나는 꼭 가서 응징하겠다고 했다.”
-무장공비 출신 과 갔는데 믿을 수 있었나.
“남한에서 잡힌 무장공비 중 4명을 선발했다. 단검 훈련 등을 혹독하게 시키고, 불고기도 사주면서 신뢰를 쌓았다. 첫 번째 작전 때는 ‘대원들이 변절하면 나는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도 한 게 사실이지만 1차 침투 이후 그들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
-침투 과정은.
“지뢰가 없는 계곡을 타고 적진으로 다가갔다. 적의 복장을 했지만 조마조마했다. 계곡 1㎞를 전진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침투에 성공해 무기를 든 적군들을 사살했다. 그러나 사단장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가족들은 작전을 알았나.
“최근까지도 몰랐다. 작전을 앞두고 잠자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죽으면 내 자식들은 아빠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3성 장군 출신 동기들도 이제야 당시 작전을 알게 됐다며 격려 전화를 줬다.”
이 의원은 “북한은 이후에도 김신조를 남파하는 등 도발을 계속했고, 나는 무장공비를 사살하고 땅굴을 찾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