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향기

매월당 김시습의 시 한수.

구자융 2011. 12. 3. 19:05

道中

 

日暖泥融芹吐芽 (일난니융근토아)

此行占得一年華 (차행점득일년화)

東風二月關西道 (동풍이월관서도)

喜見春畦葶藶花 (희견춘휴정력화)

 

길을 떠나며

 

날이 따뜻하여 진흙은 물러 미나리 싹 돋아나니

이번 행차에 한 해 세월을 차지해 얻었구나.

동풍 부는 이월 달, 관서(關西)로 가는 길에

봄밭의 냉이 꽃을 기쁜 마음으로 보는구나.

 

 

 

 

동풍이 부는 2월에 관서로 길을 떠나며 지은 시다. 동풍은 겨울이 지나면서 불어오는, 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바람이다.

김시습은 1456년 여름에 한양으로 들어와 사육신의 수급을 훔쳐내어 노량원에 안치시키고 다시 철원 초막동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며 박계손 일가의 부탁으로 가문 대대로 내려온 비기인 징심록을 살피고 추기를 달아준 후에 허허롭게 유람의 길에 올랐다.

 

다수의 사람들이 김시습이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그래서 출세에 한계를 느껴 스스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고 강변한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수양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보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세종이 한 약조를 철저히 이행해야 했다. 이른바 명분의 문제였다. 표면적으로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난의 명분을 찾고 왕위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즉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일은 김시습에게 더욱 확고한 출세를 보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김시습이 그를 거부하고 머리를 깎았을까?

 

김시습은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갈등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이 속하고자 했던 세상에 대한 환멸이었다. 알량한 출세를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조차도 버려야하는 현실에 대한 회의감이 김시습의 뇌리를 감쌌고 더 큰 세상에서 살고자 스스로를 버리고 길을 떠난다.

 

김시습은 길을 걸으며 다시 돋아나는 푸른 싹들을 바라보며 운명을 되뇐다. 지난 겨울 죽었다가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살아나는 생명들, 지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그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 최근 발표작 '매월당 김시습과 떠나는 관서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