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성具

하남시 효죽동, 능안마을

구자융 2014. 3. 26. 18:47

능성 구씨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한다. 구존유는 송나라 한림학사 출신이라 전하는 능성(綾城) 주(朱)씨 주잠(朱潛)의 딸과 결혼하여 능성에서 생활하였는데, 이로 인해 본관을 능성이라 한 듯하다. 능성 구씨의 분파는 고려말 조선초에 활동한 7세조의 인물을 파조로 하여 11개 파로 나뉘었는데, 이 가운데 9개 파가 실존하고 나머지는 전하지 않는다. 구현좌(具賢佐)의 후손이 판사파(判事派), 구현로(具賢老)의 후손이 전서파(典書派), 구영량(具英良)의 후손이 시랑중파(侍郞中派), 구홍(具鴻)의 후손이 좌정승파(左政丞派), 구성량(具成亮)의 후손이 판안동파(判安東派), 구성로(具成老)의 후손이 도원수파(都元帥派)이다. 그리고 구현보(具賢輔)의 후손이 낭장파(郎將派), 구현기(具賢器)의 후손이 감무파(監務派)이다. 능성 구씨가 세족으로 등장한 것은 각 파조가 활동하였던 이 시기였다. 


하남시 감일동 능안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구씨 동족마을은 도원수파의 파조 구성로의 손자 구치관(具致寬)의 4세손 직장공(直長公) 구징(具徵)이 감일동에 묘소를 두고, 이어 그의 후손들이 이 마을에 세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구성로는 고려말 1388년(우왕 14)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요동정벌에 참여하였다가 이성계파에 속하여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공을 세웠다. 


이어 그는 동지밀직, 경상도 도절제사를 거쳐 조선개국 후 자헌대부로 강원도 도원수에 올랐다. 이어 구치관은 구성로의 손자이며 공주목사를 역임한 구양(具楊)의 아들로 조선전기 능성 구씨가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계유정란(癸酉靖亂) 이후 좌승지에 오르고 이어 좌익 3등공신에 올라 능성부원군에 봉해졌다가, 1466년(세조 12)에는 영의정이 되었다. 성품이 엄격하고 깨끗하여 재산을 늘리지 않아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구치관묘(具致寬墓)가 주 동쪽 60리에 있는데, 서거정이 비명을 지었다고 전한다